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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지준

옥지준

1912년 7월 14일 출생

황해도 사리원읍 동리 151 거주


사리원공립보통학교 졸업

자동차 운전수, 발동기 및 농기구 사업

1937년 12월 침례를 받아 등대사 입사

1939년 6월 29일 검거

1942년 7월 14일 1심 판결
(징역 2년 6개월, 미결구류통산 400일)


2000년 12월 6일 사망

1939년 9월 26일 경기도경찰부 신문

문: 현재의 지나사변에 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답: 반대합니다. 중국사변은 일종의 전쟁으로서 양국의 군인들을 다수 죽입니다.
저희들이 믿는 여호와 하느님은 인간을 죽이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저희 신자들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할 수 없습니다. 천황폐하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느님의 인간을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이 성서에 쓰여있는 이상 그 명령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 여호와의 명령에 따릅니다. 때문에 현재의 일중간의 전쟁에 대해서도 저희들은 전쟁을 반대합니다.

1939년 9월 26일 경기도경찰부 신문

답: …저희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 하느님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절하지 않으며
여호와 이외의 자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예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서에도 그 의미가 적혀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요배할 수 없습니다. 천황폐하는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피조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에 요배할 수 없습니다.

1940년 6월 28일 동대문경찰부 신문

문: 당신의 현재 심경과 장래의 방침은 어떠한가?

답: 저는 하느님의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의 증명과 하느님 왕국의 복음을 입증하고, 하느님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을 약속하고 있으며…지금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일도 결국
하느님 왕국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현재에도 장래에도 조금도 변함 없이 그 목적 수행에
복종할 것입니다.

1939년 9월 26일 경기도경찰부 신문

문: 지나사변이 시작되서부터 애국운동이나 국방헌금의 일을 하였는가?

답: 그런 일은 후방의 활동으로 군사적 의미이며 사람을 죽이는 것을 원조하는 의미가 되므로 하지 않습니다.

문: 위문대 등을 보낸 적도 없는가?

답: 동일한 의미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1939년 9월 26일 경기도경찰부 신문

답: 출정군인의 송영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출정군인은 전쟁에 가서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군인을 송영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장려 및 원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1940년 6월 10일 경기도경찰부 신문 (제3회)

문: 지금도 등대사의 교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답: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틀림이 없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장래에도 믿음을 바꾸지 않을 생각인가?

답: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1941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 신문

문: 피고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나서 조선신궁 그 외의 신사를 참배한 것이 있는가?

답: 초등학교 때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 전에는 있지만 증인이 되서는 없습니다.

문: 왜 참배 안 했는가?

답: 성서에 하느님 여호와 이외의 하느님은 참배하지 말라고 쓰여 있어서 안했습니다.

1942년 6월 11일 공판

문: …등대사의 교리는 잘못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 국체를 변혁하는 것을 종극의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므로 믿음을 포기할 의사는 없는가?

답: 아직 저로서는 그 교리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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